넷플릭스는 왜 똑같은 경찰서 세트장에서 4개국 드라마를 찍었을까?

하나로 찍어 넷으로 쪼갠 기묘한 시리즈, 《크리미널》

넷플릭스 오리지널 라인업에는 눈길을 끄는 독특한 수사극 시리즈가 있다. 바로 《크리미널(Criminal, 2019)》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4개국 버전으로 각 3부작씩 총 1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놀랍게도 같은 시기, 스페인 마드리드의 동일한 취조실 세트장에서 같은 제작진의 손을 거쳐 연달아 촬영됐다. 그러나 넷플릭스 화면에서 이 작품들은 완전히 별개로 제작된 4개의 독립된 시리즈로 분류되어 서비스된다.

하나의 기획으로 한 세트장에서 촬영한 작품을 굳이 네 개로 쪼개어 배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암스테르담대학교와 몬트리올대학교의 미디어 연구자 프레데리크 카줌(Frédérique Khazoom)은 학술지 《미디어 앤 커뮤니케이션(Media and Communication)》에 발표한 논문 〈전 지구적 규모의 텔레비주얼리티: 넷플릭스의 로컬 언어 전략〉을 통해 이 질문을 파고든다. 저자는 이 기묘한 제작 방식이 단순한 실험을 넘어, 넷플릭스가 전통적인 글로벌 방송 산업의 규칙을 어떻게 해체하고 재편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분석한다.

전통적 방송 포맷 유통: ‘로컬-글로벌-로컬’의 사슬

과거 전통 방송 산업에서 프로그램 포맷의 해외 진출은 철저히 순차적인 경로를 밟았다. 미디어학자 장 샬라비(Jean K. Chalaby)가 제시한 ‘로컬-글로벌-로컬(local-global-local)’ 모델이 대표적이다.

특정 국가에서 흥행이 검증된 원작 프로그램(로컬)이 나오면, 글로벌 배급사가 해외 판권을 사들여 타국 방송사나 제작사에 라이선스를 판매하고(글로벌), 이를 구매한 현지 제작진이 자국 정서에 맞춰 다시 제작(다시 로컬)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는 원작자, 배급사, 현지 제작사, 방영 방송사라는 다층적 이해관계자가 필수적으로 개입했다. 국가별로 이 사슬이 매번 반복되다 보니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소모됐다. 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수직 계열화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자사가 방송 채널을 보유한 일부 국가에만 적용할 수 있어 물리적 확장의 한계가 분명했다.

넷플릭스의 유통 사슬 압축: ‘글로벌-로컬들-글로벌’ 모델

넷플릭스는 2013년 자체 오리지널 제작에 돌입하면서 이 유통 사슬을 단숨에 통합·압축했다. 기획(origination)부터 배급(distribution), 제작(production), 최종 서비스(acquisition)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단독으로 장악했기 때문이다. 중간 배급사나 타국 방송사를 거칠 이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결정적 차이는 ‘동시성’과 ‘다대다(many-to-many)’ 구조에 있다.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단일 플랫폼으로 서비스되는 넷플릭스는 특정 국가의 성공을 기다린 후 순차 수출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글로벌 동시 소비를 전제로 기획하고, 여러 국가 버전을 동시에 제작해 같은 날 전 세계에 일제히 푼다.

《크리미널》은 이 새로운 모델의 전형이다. 영국 제작사 이디엇램프 프로덕션(Idiotlamp Productions)이 스페인 넷플릭스 스튜디오에서 4개국 버전을 한 번에 제작했다. 각본가, 감독, 배우 등 핵심 창작진만 해당 국가 인력으로 채웠을 뿐, 물리적 인프라와 기술 스태프는 철저히 공유했다.

저자는 이를 넷플릭스 특유의 ‘글로벌-로컬들-글로벌(global-locals-global)’ 경로로 규정한다. 데이터로 글로벌 흥행 가능성을 사전 검증하고, 전 세계 독점 IP를 확보한 뒤, 다국가 버전을 동시 제작해 일제히 배급하는 완결된 순환 구조다.

세제 혜택과 EU 규제를 동시에 겨냥한 비즈니스 셈법

《크리미널》의 분할 배급에는 치밀한 제도적 계산이 작동했다.

유럽연합(EU)은 2018년부터 다국적 VOD 사업자를 대상으로 플랫폼 카탈로그의 최소 30%를 유럽산 콘텐츠로 채우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특정 회원국별 비율을 강제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세제 혜택이 크고 글로벌 투자 유치에 우호적인 스페인을 허브로 낙점해 제작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규제 충족 거점으로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크리미널》을 4개의 개별 시리즈로 쪼개어 등록함으로써 유럽산 콘텐츠 카탈로그 수량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고 쿼터 규제를 손쉽게 넘겼다. 동시에 각국 시청자에게는 자국 맞춤형 타이틀로 개별 추천할 수 있어 마케팅 노출 효과까지 극대화했다.

화려한 겉포장과 무색무취한 알맹이: 시각적 양면성

논문은 미디어학자 존 콜드웰(John Caldwell)의 ‘텔레비주얼리티(televisuality)’와 마라이케 제너(Mareike Jenner)의 ‘초국적 문법(grammar of transnationalism)’을 결합해 《크리미널》의 미학적 이중성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 인터페이스 차원의 스타일 과잉 (Style Excess): 넷플릭스는 시청자의 이용 기록과 취향 데이터를 분석해 썸네일 포스터와 추천 카테고리를 실시간으로 재구성한다. 《크리미널》은 이용자에 따라 영국 드라마, 유럽 범죄 시리즈, 수사 미스터리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끊임없이 화려하게 재포장된다.
  • 미학적 차원의 스타일 결핍과 탈문화화 (Style Scarcity & Deculturization): 반면 작품 내부의 시각적 요소는 극도로 단순화됐다. 제작진은 특정 국가 경찰서의 고유한 외형이나 지역적 특색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파리 테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 같은 역사적 사건이 언급되지만, 심층적인 사회적 맥락보다는 범인의 유무죄를 가리는 장르적 퍼즐 조각으로만 쓰인다.

전 세계 누구나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도록 문화적 고유성을 지우고 보편적 장르 문법만 남겨둔 셈이다.

그래서 이게 왜 중요한가

이 논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크리미널이라는 드라마 하나를 분석해서가 아니다. 이 사례는 스트리밍 시대에 TV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걸 아주 구체적인 증거로 보여준다.

첫째, 힘의 균형이 완전히 넷플릭스 쪽으로 쏠렸다. 예전에는 한 나라에서 성공한 포맷이 해외로 나가려면 그 나라 방송사·제작사·배급사를 거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각국의 문화적 중개자들이 나름의 목소리를 낼 여지가 있었다. 지금은 넷플릭스 한 회사가 기획부터 제작, 배급까지 다 틀어쥐고 있어서, 어떤 나라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내보일지를 사실상 혼자 결정한다. 저자는 이게 “기존 TV 산업의 비대칭적 권력 구조를 오히려 더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둘째, 이런 구조는 각국의 문화적 규제—예컨대 EU의 유럽산 콘텐츠 쿼터—를 넷플릭스가 형식적으로만 지키면서 실질적으로는 자기 상업적 이해관계에 맞춰 우회할 여지를 만든다. 어느 나라에 더 투자하고 어느 나라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할지도 결국 넷플릭스의 알고리즘과 사업적 판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셋째, 가장 근본적으로는 “현지화(localization)”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의 현지화가 그 나라의 문화·정서·현실을 반영해 다시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넷플릭스식 현지화는 언어와 배우 국적만 현지의 것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최대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보편적 이야기로 만드는 쪽에 가깝다. 겉으로는 “영국판”, “프랑스판”, “독일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문화적 실체는 서로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해지는 역설이 생긴다.

결국 이 논문이 던지는 질문은 이거다. 전 세계 어디서나 보게 만들기 위해 콘텐츠에서 지역색을 지워내는 이 방식이, 장기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이야기들을 점점 더 비슷비슷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넷플릭스가 자랑하는 “전 세계 다양한 로컬 콘텐츠”라는 이미지 뒤에서, 실제로는 국경을 넘나들기 좋은 몇 가지 정형화된 장르와 서사 문법만 살아남고 있는 건 아닐까?

넷플릭스가 계속해서 “K-드라마”, “스페인 드라마”, “프랑스 스릴러” 같은 라벨로 콘텐츠를 마케팅하는 걸 볼 때마다, 이 논문이 던진 질문을 한 번쯤 떠올려볼 만하다. 그 라벨이 정말 그 나라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전 세계에 팔기 좋게 포장된 로컬 무늬의 글로벌 상품인 것인지 말이다.

Citation : Khazoom, F. (2025). Televisuality on a global scale: Netflix’s local-language strategy. Media and Communicatio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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