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문화 다양성을 넓혔을까, 미국 문화를 확산했을까
넷플릭스에 접속하면 한국 드라마부터 스페인 범죄물, 영국 청춘물, 독일 미스터리까지 세계 각국의 콘텐츠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과거에는 자국의 방송국이나 영화관을 통해 제한된 해외 작품만 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한 플랫폼에서 여러 언어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넷플릭스는 문화 다양성을 확대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Salsabila(2021)는 논문 ‘Netflix: Cultural Diversity or Cultural Imperialism?’에서 넷플릭스의 문화적 다양성이 정말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기 위한 것인지 질문한다.
논문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다양한 문화를 세계에 소개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 시청자의 취향과 미국 대중문화의 기준이 여전히 강하게 작용한다. 문화 다양성은 확대됐지만, 그 다양성을 선택하고 가공하며 세계에 유통하는 권력은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가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든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기존 미국 방송과 차별화된 가장 큰 특징은 주류 미디어가 충분히 다루지 않았던 집단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제작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여성 교도소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과 성적 정체성, 계층적 배경을 가진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다루고,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학교폭력과 성폭력, 자해와 자살 같은 무거운 사회문제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작품은 기존 할리우드 콘텐츠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던 사람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화면에서 발견할 기회를 제공했다. 동시에 넷플릭스는 기존 미디어가 놓친 시청자 집단을 새로운 구독자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따라서 넷플릭스가 내세우는 다양성은 사회적 의미와 사업적 목적을 동시에 가진다. 소수자의 재현을 확대했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지만, 다양성 자체가 더 많은 시청자와 구독자를 확보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된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문화 다양성과 몰아보기의 결합
넷플릭스는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몰아보기’라는 소비 방식과 결합했다. 한 시즌의 전체 에피소드를 동시에 공개해 시청자가 연속해서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만든 것이다.
시청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인물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적 연결은 다음 에피소드를 계속 시청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문화적 재현과 플랫폼의 소비 구조가 결합하면서 다양성은 넷플릭스의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문제는 어떤 문화와 정체성이 재현되는지, 그리고 누구의 시각을 기준으로 재구성되는가이다. 논문은 넷플릭스의 다양성이 세계 각 지역을 동등하게 보여주기보다 미국의 다문화 사회와 미국 소비자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콘텐츠의 기준은 왜 미국이 되는가
넷플릭스의 비영어권 콘텐츠는 현지에서 제작되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미국 시청자에게 익숙한 이야기 구조와 장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 제작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영국 배우와 배경을 사용하지만, 학교의 분위기와 인물의 행동은 미국 청춘 드라마처럼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페인의 《엘리트들》 역시 스페인어 작품임에도 설정과 생활 방식에서 미국 드라마와 유사한 특징을 나타낸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넷플릭스가 제작자에게 미국화를 강요한 결과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유럽을 비롯한 여러 지역은 이미 오랫동안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TV 프로그램을 소비해 왔다. 그 결과 미국식 생활방식과 서사 구조가 ‘세계인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형식’처럼 받아들여지게 됐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숨어 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성’이 사실상 미국 문화에 익숙하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면 미국 시청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식에 맞춰야 한다면, 문화 다양성은 외형에만 머물 가능성이 있다.
영어 더빙은 접근성을 높이지만 언어 권력을 강화한다
넷플릭스는 비영어권 콘텐츠에 영어 더빙을 제공해 더 많은 시청자가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언어 장벽을 낮추고 지역 콘텐츠의 세계적 확산을 돕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논문은 영어 더빙이 영어권 시청자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전략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원래의 언어와 목소리가 영어로 대체되면 작품에 포함된 말투와 감정, 사회적 관계, 문화적 뉘앙스가 약해질 수 있다.
결국 비영어권 제작자는 세계 시장에 도달하기 위해 영어권 관객의 시청 습관을 고려해야 한다. 영어가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표준 언어로 작동하면서 미국과 영어권 국가의 문화적 영향력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동질화, 아시아에서는 혼합이 나타난다
Salsabila는 넷플릭스의 미국화가 모든 지역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분석한다.
유럽 콘텐츠에서는 미국 작품과 비슷해지는 ‘문화적 동질화’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다. 등장인물의 생활방식과 학교 문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가치관 등이 미국 드라마와 유사해지면서 제작 국가의 차이가 흐려지는 것이다.
반면 아시아 콘텐츠에서는 지역 문화와 미국 대중문화가 결합하는 ‘문화적 혼종화’가 나타난다. 음식과 예절, 가족관계, 언어와 외모 등은 현지 문화를 유지하지만, 이야기 구조와 장르는 세계 시청자에게 익숙한 방식을 활용한다.
한국 드라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작품에는 한국의 가족문화와 사회관계가 담겨 있지만, 신분 차이를 뛰어넘는 로맨스처럼 세계적으로 익숙한 서사도 사용된다. 이처럼 지역적 특성과 글로벌 장르가 결합하면서 낯설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이는 한국 콘텐츠의 정체성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지역 문화와 글로벌 형식의 결합이 한국 드라마의 국제적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무엇이 세계 시장에서 선택되고 성공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미국 중심의 기준이 얼마나 작용하는지는 계속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 제작자에게 넷플릭스는 기회이자 새로운 의존 대상이다
넷플릭스는 과거라면 자국 시장에 머물렀을 작품을 세계 시청자에게 소개한다. 지역 제작사는 막대한 해외 배급망을 직접 구축하지 않고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제작자는 플랫폼이 선호하는 장르와 형식, 시청자의 소비 패턴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지역 시청자보다 글로벌 시청자를 먼저 생각하고, 플랫폼에서 선택될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를 제작하게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단순한 콘텐츠 유통업체를 넘어 어떤 지역 문화가 세계적으로 소개될지를 결정하는 문화적 관문이 된다. 여러 국가의 작품이 유통되더라도 실제 선택권과 데이터, 추천 알고리즘, 글로벌 노출 권한은 플랫폼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문화 다양성과 문화 제국주의는 동시에 존재한다
넷플릭스가 세계 문화에 미친 영향을 다양성 또는 제국주의 가운데 하나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
넷플릭스는 비영어권 콘텐츠와 소수자의 이야기를 세계 시장에 진출시켰다. 시청자는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언어와 문화, 정체성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중심 유통 구조에서는 얻기 어려웠던 성과다.
동시에 세계에 소개되는 콘텐츠는 미국 시청자의 취향과 미국 대중문화에 익숙한 이야기 구조에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 겉으로는 여러 국가의 문화가 등장하지만, 그 안에서 ‘보편적’이라고 인정받는 가치와 형식은 여전히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다.
결국 넷플릭스의 문화 다양성은 문화 제국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두 현상은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넷플릭스는 지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통로이면서, 그 문화를 미국 중심의 글로벌 소비 시장에 맞게 재구성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다만 이 연구는 2021년에 발표됐으며 《엘리트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브리저튼》과 당시의 한국 드라마 등 일부 작품에 대한 질적 해석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넷플릭스의 모든 콘텐츠가 미국화됐다고 일반화하기보다, 글로벌 플랫폼이 문화적 다양성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상품화하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게 하는 연구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Citation
Salsabila, K. (2021). Netflix: Cultural diversity or cultural imperialism? Rubikon: Journal of Transnational American Studies, 8(1), 15–27. https://doi.org/10.22146/rubikon.v8i1.65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