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은 한국이, 지적재산권은 플랫폼이: K-콘텐츠 산업의 딜레마

한국 드라마와 영화, 웹툰, 웹소설은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콘텐츠의 세계적인 성공이 곧바로 한국 제작사의 장기적인 수익과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흥행하더라도 핵심 지식재산권(IP)을 제작사가 보유하지 못하면 속편, 게임, 상품, 공연 등에서 발생하는 추가 수익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Jang과 Kim(2023)은 한국 미디어 산업의 콘텐츠 IP 활용 사례를 분석하고, 성공적인 IP가 어떤 경로를 통해 확장되는지 살펴봤다. 이 연구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 콘텐츠 산업은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 단계를 넘어, 그 작품을 오랫동안 살아남는 자산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

콘텐츠의 성공과 IP의 성공은 다르다

과거 영화 산업에서는 박스오피스 성적이, 방송 산업에서는 시청률이 작품의 성공을 판단하는 대표적인 기준이었다. 스타 배우와 유명 감독의 참여도 콘텐츠 흥행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평가됐다.

그러나 콘텐츠 IP의 관점에서는 한 작품이 처음 공개됐을 때 얼마나 성공했는지만으로 그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 원작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시즌제 작품, 스핀오프, 영화, 웹툰, 게임, 공연, 상품 등으로 계속 확장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콘텐츠의 성공이 단기적인 흥행이라면 IP의 성공은 이야기를 장기간 활용하며 새로운 수익과 팬덤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유명 제작진에 대한 의존보다 확장 가능한 이야기와 세계관을 확보하는 일이다.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한국 콘텐츠 산업의 딜레마

연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한국 콘텐츠 산업이 직면한 IP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한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 제작진이 만든 작품이지만 IP는 넷플릭스에 귀속됐다.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면서 게임, 상품, 체험형 행사 등 다양한 부가 사업으로 확장됐지만, 한국 제작사가 이러한 후속 수익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다.

글로벌 OTT는 막대한 제작비와 세계적인 유통망을 제공한다. 국내 제작사에는 매우 매력적인 기회다. 하지만 제작비 지원을 받는 대신 핵심 IP를 플랫폼에 넘기면, 제작사는 글로벌 성공작을 만들고도 장기적으로는 플랫폼의 콘텐츠 공급자에 머물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콘텐츠 산업의 과제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제작비, 위험 부담, 글로벌 유통의 이점을 활용하면서도 IP 소유권과 후속 사업 참여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계약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연구는 콘텐츠 IP를 어떻게 분석했나

Jang과 Kim은 자원 기반 관점(Resource-Based View, RBV)과 지식 기반 관점(Knowledge-Based View, KBV)을 이론적 틀로 활용했다.

자원 기반 관점에 따르면 기업의 경쟁력은 기업이 보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서 발생한다. 콘텐츠 IP 역시 기업이 소유한 중요한 무형자산이다. 좋은 작품을 제작하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작품의 권리를 확보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직과 지식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연구 방법으로는 탐색적 사례 연구가 사용됐다. 연구진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제시한 성공 콘텐츠 IP 목록을 바탕으로 한국 콘텐츠 24개를 선정했다.

분석 대상은 다음과 같이 구성됐다.

  • 방송 드라마 기반 IP 10개
  • 웹툰 기반 IP 10개
  • 웹소설 기반 IP 4개

여기에 비교 대상으로 디즈니의 대표적인 슈퍼 IP 6개가 추가됐다. 미키 마우스와 친구들, 스타워즈, 디즈니 프린세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곰돌이 푸, 겨울왕국이 포함됐다.

연구진은 각 사례의 스토리 확장, 파생 콘텐츠, 시청률과 조회수, 해외 수출, 플랫폼 배포, 팬덤 활동, 상품화, IP 지속 기간 등을 비교했다. 이를 통해 콘텐츠 IP의 확장 경로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유형 A: 동일한 장르와 매체 안에서 확장하기

첫 번째는 하나의 콘텐츠가 같은 장르와 매체 안에서 시즌제 작품으로 확장되는 방식이다. 한국 방송 드라마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형태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김사부’라는 중심 캐릭터와 ‘돌담병원’이라는 공간을 유지하면서 여러 시즌에 걸쳐 세계관을 확장했다. 이전 시즌의 등장인물이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고 새로운 인물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팬덤도 장기간 유지됐다.

<펜트하우스>, <보이스>, <비밀의 숲> 등도 동일한 드라마 장르 안에서 시즌제로 확장됐다. 그러나 한국 방송 드라마는 시즌제 이외의 확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시퀄, 프리퀄, 스핀오프를 처음부터 고려한 세계관 설계도 흔하지 않았다.

드라마가 흥행한 뒤 대본집이나 소설이 출판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영화, 게임, 공연, 웹툰 등으로 이어지는 확장 사례는 많지 않았다. 결국 원작 드라마의 인기가 식으면 IP의 생명력도 함께 약해지는 구조였다.

유형 B: 웹툰과 웹소설을 영상으로 확장하기

두 번째는 웹툰이나 웹소설을 드라마와 영화 같은 다른 매체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연구는 이 유형이 한국 콘텐츠 IP 산업에서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진다고 평가한다.

웹툰과 웹소설은 영상 콘텐츠보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이야기와 캐릭터를 먼저 시험할 수 있다. 조회수와 독자 반응을 통해 시장성을 확인할 수 있고, 이미 형성된 팬덤을 영상 콘텐츠의 초기 관객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웹소설에서 출발해 드라마, 오디오 콘텐츠, 게임 의상 협업, 상품, 이모티콘 등으로 확장됐다. 드라마가 성공한 이후 원작 소설의 판매량과 웹소설 조회수가 다시 증가하는 역방향 효과도 나타났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역시 웹툰을 영상으로 확장한 사례다. 드라마는 원작에 없던 캐릭터를 추가하고 기존 인물의 설정을 구체화하면서 영상 매체에 맞게 세계관을 재구성했다.

하지만 원작의 인기가 영상 콘텐츠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매체가 바뀌면 이용자의 기대와 이야기 전달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웹소설 독자에게 인기 있는 설정이 TV 시청자에게 동일하게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은 없다. 더구나 영상화에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했을 때의 위험도 훨씬 크다.

결국 성공적인 각색은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원작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매체의 특성에 맞게 캐릭터, 이야기 구조, 시각적 표현을 재설계해야 한다.

유형 C: 콘텐츠를 상품과 산업으로 확장하기

세 번째는 콘텐츠를 굿즈, 캐릭터 상품, 공연, 게임, 이벤트, 테마파크 등 다른 산업으로 확장하는 단계다. 단순한 콘텐츠 재사용을 넘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드는 가장 발전된 IP 활용 방식이다.

연구에서 비교 대상으로 사용된 디즈니 IP는 모두 이 유형에 해당했다. 디즈니는 캐릭터를 영화나 애니메이션 속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캐릭터 상품, 게임, 공연, 테마파크, 라이선싱 사업을 서로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IP 생태계를 구축한다.

상품은 부가 수익을 만드는 수단인 동시에 작품을 계속 노출하고 팬덤을 유지하는 매개체다. 팬은 상품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고, 이러한 소비는 다시 콘텐츠의 생명력을 연장한다.

한국에서도 <미생>, <치즈인더트랩>, <유미의 세포들> 등이 이모티콘과 굿즈로 확장됐다. 그러나 디즈니와 비교하면 상품의 종류와 판매 기간이 제한적이었고, 상품화가 장기적인 매출로 이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부족했다.

즉, 한국 콘텐츠의 상품화는 아직 작품 홍보를 위한 단기 이벤트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IP를 장기간 유지하는 독립적인 사업 영역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한국 콘텐츠 IP의 가장 큰 강점은 웹툰과 웹소설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이 디즈니와 동일한 모델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디즈니는 약 100년에 걸쳐 캐릭터를 축적했고, 인수합병을 통해 스타워즈와 마블 같은 강력한 IP를 확보했다. 한국 기업이 단기간에 같은 규모의 생태계를 구축하기는 어렵다.

대신 한국은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독특한 디지털 콘텐츠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들 콘텐츠는 장기간 연재되면서 세계관을 축적하고 독자 반응을 확인할 수 있으며,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기 전부터 팬덤을 형성할 수 있다.

특히 웹소설이 웹툰으로 제작되고 다시 드라마나 영화로 확장되는 과정은 IP의 노출을 단계적으로 높인다. 영상 콘텐츠가 성공하면 원작의 조회수와 판매량이 다시 증가하면서 원작과 파생 콘텐츠가 서로의 가치를 높이는 순환 구조도 만들어진다.

다만 이러한 순환을 지속하려면 원작자, 제작사, 플랫폼 사이의 권리와 수익 배분 구조가 명확해야 한다. IP를 누가 소유하고 누가 후속 사업을 결정할 수 있는지가 콘텐츠의 장기적인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흥행작이 아닌 장수 IP를 만드는 조건

Jang과 Kim의 연구는 한국 콘텐츠 산업이 제작 중심 구조에서 IP 중심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콘텐츠를 기획할 때부터 시즌제, 시퀄, 프리퀄, 스핀오프, 게임, 공연 등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작품이 성공한 뒤 급하게 파생 상품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세계관의 일관성과 장기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특정 스타 작가, 감독, 배우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제작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의 역량만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지속적으로 IP를 발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조직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세 번째로 팬덤을 단순한 시청자 집단이 아니라 IP 확장의 핵심 참여자로 인식해야 한다. 팬 창작물, 커뮤니티, 상품 소비, 이벤트 참여는 IP를 오래 유지하고 새로운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OTT와 협력할 때 제작비뿐만 아니라 IP 소유권과 후속 수익 구조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 콘텐츠가 국내 산업의 장기적인 자산으로 축적되려면 제작 단계부터 권리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

콘텐츠 제작 강국에서 IP 강국으로

한국 콘텐츠 산업은 세계적인 제작 역량을 증명했다. 하지만 뛰어난 콘텐츠를 계속 생산하는 것과 그 콘텐츠의 권리를 보유하고 장기간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한국의 콘텐츠 IP는 아직 디즈니의 슈퍼 IP처럼 수십 년간 이어지는 생태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확장 경로가 짧고 상품화의 수익도 제한적이며, 글로벌 플랫폼이 핵심 권리를 확보하는 사례도 많다.

그럼에도 웹툰과 웹소설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디지털 콘텐츠 구조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흥행작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야기와 캐릭터를 장기간 활용할 수 있는 권리와 시스템을 확보하는 일이다.

앞으로 한국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인기 있는 작품을 만들었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 성공을 누구의 자산으로 남기고, 얼마나 오래 확장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Citation

Jang, C., & Kim, S. (2023). Extensions of intellectual property in media industry: The Korean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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