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어떻게 할리우드의 영화 공식을 바꾸었나
넷플릭스는 단순히 영화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에 머물지 않았다. 기존 할리우드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영화의 제작·배급·상영 방식을 흔들었으며, 무엇을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다.
Joo(2020)는 넷플릭스와 할리우드 사이의 갈등을 분석하며 스트리밍 서비스가 영화 산업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봤다. 논문의 핵심 쟁점은 극장을 거치지 않고 자사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공개하는 넷플릭스의 배급 전략이다.
DVD 대여 회사에서 콘텐츠 제작사로
1997년 DVD 우편 대여 서비스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며 사업의 중심을 온라인으로 옮겼다. 초기에는 다른 방송사와 영화사가 제작한 콘텐츠를 공급받아 서비스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Starz와의 계약이다. 넷플릭스는 2008년 Starz로부터 약 2,500편의 영화와 프로그램에 대한 스트리밍 권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넷플릭스의 성장이 자신들의 사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Starz가 계약 갱신을 거절하면서 넷플릭스는 외부 콘텐츠에 의존하는 사업 모델의 한계를 확인했다. 다른 회사의 콘텐츠를 빌려 제공하는 방식으로는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이에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2013년 공개된 드라마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결과였다. 이후 넷플릭스는 TV 프로그램을 넘어 영화 제작과 배급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기존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직접 경쟁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전통적인 유통 순서를 무너뜨리다
전통적인 영화 산업에서는 한 편의 영화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유통된다. 먼저 극장에서 독점 상영된 뒤 DVD와 주문형 비디오, 유료 케이블, 지상파 방송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를 영화 산업의 ‘윈도우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 구조에서 극장은 영화가 처음 공개되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미국의 주요 극장 체인들은 일반적으로 약 90일의 극장 독점 상영 기간을 요구했다. 극장 상영이 끝난 이후에야 영화는 다른 유통 경로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이러한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영화를 자사 플랫폼에서 곧바로 공개하거나 일부 극장과 온라인에서 동시에 선보였다. 영화 제작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면서 극장, 배급사, 유료 방송 등 기존의 중간 단계를 건너뛴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이용자에게 더 빠르고 편리한 관람 환경을 제공했지만, 극장 사업자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변화였다. AMC, Regal, Cinemark 등 미국의 주요 극장 체인들은 전통적인 상영 기간을 지키지 않는 넷플릭스 영화를 보이콧했다.
넷플릭스의 배급 방식은 단순히 새로운 관람 수단을 추가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처음 공개하는 장소로서 극장이 누려온 독점적인 지위와 전통적인 극장 개봉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변화였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폭발한 갈등
넷플릭스와 할리우드의 갈등은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전후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넷플릭스가 제작·배급한 영화로,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로마》가 작품상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자 할리우드 내부에서는 넷플릭스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일부 영화인은 극장에서 충분히 상영되지 않은 작품을 영화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스트리밍을 중심으로 공개된 작품은 영화보다 텔레비전 콘텐츠에 가까우므로 아카데미상이 아닌 에미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면 넷플릭스는 제한적인 극장 상영을 통해 아카데미의 자격 요건을 충족했다. 영화가 공개되는 장소와 방식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었다.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먼저 상영되어야 영화가 되는가?
Joo는 상영 장소만으로 영화와 텔레비전 콘텐츠를 구분하는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품의 내용과 완성도가 아니라 극장 상영 여부를 기준으로 영화의 자격을 결정하는 것은 변화한 미디어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에 집중한 할리우드
넷플릭스를 비판하는 할리우드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기존 스튜디오의 제작 전략에 있다.
DVD 시장이 축소되고 영화 제작비가 상승하면서 대형 스튜디오들은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텐트폴 영화와 프랜차이즈에 집중했다. 인기 원작을 바탕으로 한 속편과 스핀오프, 슈퍼히어로 영화와 대규모 블록버스터가 극장 상영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텐트폴 영화는 한 편의 성공으로 스튜디오의 연간 실적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 작품을 의미한다. 프랜차이즈 영화는 속편과 스핀오프뿐만 아니라 캐릭터 상품과 라이선스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스튜디오 입장에서 이러한 영화는 흥행 실패의 위험을 줄이고 다양한 부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프랜차이즈에 자본이 집중되면서 중간 규모의 영화, 로맨틱 코미디, 예술 영화와 새로운 감독의 작품은 투자받기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대형 스크린을 지키겠다는 할리우드의 주장은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 극장은 영화의 예술성과 전통을 상징하지만, 실제 극장 상영작은 소수의 대규모 프랜차이즈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가 포기한 영화를 선택한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개별 영화의 극장 흥행 수입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가입자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따라서 자사가 제작하는 모든 영화가 개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해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러한 사업 모델은 기존 스튜디오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넷플릭스는 로맨틱 코미디, 외국어 영화, 예술 영화뿐만 아니라 여성과 소수 집단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도 제작 기회를 제공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은 대표적인 사례다. 높은 제작비 때문에 기존 배급사가 포기한 프로젝트를 넷플릭스가 인수하면서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머드바운드》는 흑인 여성 감독과 여성 촬영감독에게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고, 스페인어 영화 《로마》는 비영어권 영화가 세계적인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넷플릭스 역시 가입자 증가와 시장 확대라는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존 스튜디오 중심의 영화 산업에서는 제작되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대형 스튜디오가 흥행 가능성이 높은 프랜차이즈에 집중하는 동안 넷플릭스는 그들이 남긴 시장의 빈틈을 채웠다. 이런 점에서 넷플릭스가 영화 제작의 다양성과 접근성을 확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되돌리기 어려운 영화 산업의 변화
넷플릭스가 영화 산업에 던진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극장 개봉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과거에도 TV 영화나 극장에 개봉하지 않고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가 있었지만, 대부분 영화 산업의 주변부에 머물렀다.
반면 넷플릭스 영화는 유명 감독과 배우, 대규모 제작비와 국제 영화제를 바탕으로 산업의 중심부에 진입했다. 넷플릭스 영화에 대한 할리우드의 강한 반발은 넷플릭스가 가져온 변화가 그만큼 급진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넷플릭스를 비판했던 기존 미디어 기업들까지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넷플릭스의 방식이 일시적인 예외가 아니라 영화 산업의 새로운 경쟁 원리가 되었다는 의미다.
앞으로 영화 산업은 극장과 스트리밍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기보다 두 방식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극장 독점 상영 기간을 단축하고 이후 프리미엄 스트리밍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하나의 타협안이 될 수 있다.
극장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형 스크린과 공동 관람 경험은 여전히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영화가 반드시 극장에서 먼저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더 이상 절대적인 기준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넷플릭스가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영화를 보는 장소만 바꾼 것이 아니다. 누가 영화를 제작하고, 어떻게 배급하며, 어떤 작품이 세계 관객을 만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영화 산업의 권력 구조를 바꾸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Citation
Joo, J. S. (2020). Netflix and changes in the Hollywood film industry. Journal of Industrial Convergence, 18(5), 3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