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변화를 일으키면 모두 ‘파괴적 혁신’일까? 

새로운 기술이나 기업이 산업을 크게 바꾸면 우리는 흔히 ‘파괴적 혁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파괴적 혁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Dan Yu와 Chang Chieh Hang의 「A Reflective Review of Disruptive Innovation Theory」(2010)는 이처럼 널리 쓰이지만 종종 혼동되는 개념을 정리하는 논문이다. 저자들은 기존 연구를 검토하며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파괴적 혁신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 이론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기업은 어떤 조건에서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내거나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가?

파괴적 혁신은 ‘더 뛰어난 기술’의 등장과 다르다

파괴적 혁신의 출발점은 역설적이다. 새로운 제품이 기존 제품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것이 아니라, 기존 고객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능에서는 오히려 뒤처질 수 있다.

대신 다른 장점이 있다. 더 저렴하거나, 사용하기 편하거나, 휴대하기 쉬울 수 있다. 기존 제품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접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품은 처음에는 작은 시장이나 새로운 고객층에서 출발한다. 이후 성능이 개선되어 주류 고객에게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수준에 도달하면 기존 제품의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기존 제품의 성능을 완전히 뛰어넘을 필요는 없다. 고객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고성능보다 가격이나 편의성이 더 중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은 이 과정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 저가시장 파괴: 기존 제품이 필요 이상으로 고성능이고 비싸다고 느끼는 고객에게 단순하고 저렴한 대안을 제공한다.
  • 신시장 파괴: 비용이나 사용의 어려움 때문에 기존 제품을 소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연다.

따라서 파괴적 혁신을 이해하려면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어떤 고객이 어떤 가치를 원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저자들이 바로잡는 세 가지 오해

첫째, 파괴성은 상대적이다. 같은 혁신도 기업의 기존 사업모델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논문이 소개하는 사례는 인터넷 직접판매다. 이미 전화와 우편으로 컴퓨터를 판매하던 델에게 인터넷 판매는 기존 방식의 연장이었다. 반면 소매 유통망에 의존하던 경쟁사에는 기존 사업 관계를 흔드는 변화가 될 수 있었다. “이 기술은 파괴적인가?”라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라는 질문이 따라야 한다.

둘째, 기존 기업이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업모델이 성장하더라도 기존 기업은 특정 고객층에 집중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 기존 기업이 직접 파괴적 혁신을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파괴적 혁신을 신생기업의 승리와 대기업의 몰락이라는 구도로만 보면 실제 변화의 다양한 모습을 놓치게 된다.

셋째, 큰 타격을 주는 혁신이 모두 파괴적 혁신은 아니다. 처음부터 뛰어난 성능과 낮은 비용으로 주류 시장을 공략하는 혁신도 경쟁사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이 크다는 사실만으로 Christensen이 설명한 파괴적 혁신의 경로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충격의 크기뿐 아니라 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다.

성공한 뒤에 붙이는 이름이라면, 예측에 도움이 될까?

이론을 향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예측력에 관한 것이다.

처음에 성능이 낮은 기술 중 일부는 성장하지만, 일부는 실패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중에 시장을 바꿀지 미리 구별할 수 있을까? 성공한 뒤에야 파괴적 혁신이라고 부른다면, 과거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Yu와 Hang은 이러한 비판을 소개하면서도 이론의 유용성을 지지한다. 기업의 자원 배분 방식, 새로운 사업에 대한 태도, 기존 사업의 매출 잠식을 감수하려는 의지 등을 살펴보면, 어떤 기업이 파괴적 혁신을 개발하거나 변화에 대응할 가능성이 높은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논문이 특정 기술이나 기업의 성공을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이론의 예측적 활용 가능성을 옹호하면서도 추가적인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왜 잘 운영되는 기업도 변화에 뒤처질까?

기존 기업은 주요 고객을 만족시키고 수익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한다. 현재 사업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초기의 파괴적 사업은 시장이 작고, 수익성이 불확실하며, 기존 고객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사업의 평가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새로운 기회는 계속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낸 운영 방식이 다음 사업의 성장을 막을 수 있는 셈이다.

저자들은 이 문제를 ‘기존 고객에게 지나치게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 하나로 끝내지 않는다. 새로운 고객의 필요를 알고 있어도 대응 역량이 부족할 수 있고, 경영진이 변화를 원해도 조직문화나 보상 체계가 실행을 가로막을 수 있다.

논문은 이러한 조건을 네 가지 관점에서 정리한다.

관점핵심 질문
조직 내부자원 배분, 보상, 조직문화가 새로운 사업을 지원하는가?
외부 환경협력사, 관련 기술, 금융·제도적 환경이 사업화를 뒷받침하는가?
고객과 시장기존 고객뿐 아니라 새로운 고객의 필요를 이해하는가?
기술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기술을 개발하거나 기존 기술의 다른 용도를 찾을 수 있는가?

특히 자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별도 사무실이나 법인의 존재만이 아니다. 새로운 사업에 맞는 비용구조와 의사결정 기준으로 움직일 자유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 논문이 남기는 메시지

이 논문의 강점은 파괴적 혁신을 성공한 기업에 붙이는 수식어에서 구체적인 분석의 대상으로 되돌린다는 데 있다.

무엇이 새로웠는지, 누구에게 가치가 있었는지, 어떤 시장에서 출발했는지, 기존 기업은 왜 대응하기 어려웠는지를 구분해서 질문하도록 만든다. 기술과 사업모델, 조직과 환경을 함께 살펴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한계도 있다. 저자들 스스로 지적하듯 당시 연구는 사례와 정성적 분석에 많이 의존했다. 어떤 조건이 성공에 가장 중요한지, 여러 조건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는 더 검증해야 할 문제였다. 또한 2010년의 문헌고찰이므로 이후 연구까지 반영한 최종적인 정리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논문을 읽고 나면 “이 기업은 파괴적 혁신 기업인가?”라는 질문을 조금 다르게 던지게 된다.

이 기업은 누구에게 어떤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으며, 그 기회가 성장하도록 만든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Citation

Yu, D., & Hang, C. C. (2010). A reflective review of disruptive innovation theory. International Journal of Management Reviews, 12(4), 435–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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