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은 왜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한가
공식 물가상승률이 8%라면 모든 가구가 똑같이 8%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소득과 소비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저소득층은 식료품과 전기·가스 같은 필수재에 지출하는 비중이 높고, 고소득층은 서비스와 비에너지 상품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쓴다. 따라서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급등하면 같은 나라에 살더라도 가구마다 전혀 다른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Corsello와 Riggi(2023)는 이탈리아의 소비자물가 자료를 이용해 에너지 가격 충격이 가구별 인플레이션 격차를 어떻게 확대하는지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인플레이션이 단순히 평균적인 물가 상승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과 직접 연결된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비 바구니가 다르면 체감 물가도 달라진다
인플레이션 불평등이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구마다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2022년 이탈리아에서 지출 수준이 가장 낮은 하위 20% 가구는 전체 소비의 14.6%를 에너지에 사용했다. 반면 지출 수준이 가장 높은 상위 20% 가구의 에너지 지출 비중은 6.7%에 불과했다. 식품 지출에서도 비슷한 차이가 나타났다. 하위 20% 가구의 식품 지출 비중은 33.2%였지만, 상위 20% 가구는 16.5%였다.
반대로 서비스와 비에너지 공산품 같은 근원물가 품목은 고소득 가구의 소비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품목의 비중은 상위 가구에서 76.8%였지만 취약계층에서는 52.2% 정도였다.
이 차이는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난방비와 전기요금, 교통비, 식료품비는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소비를 쉽게 줄일 수 없는 필수 지출이다. 저소득 가구는 이미 소득의 상당 부분을 필수재에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 상승을 피하거나 다른 상품으로 대체할 여유가 부족하다.
2022년 인플레이션 격차는 8.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2021년부터 시작된 에너지 가격 급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더욱 심해졌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 저지출 가구와 고지출 가구 사이의 인플레이션 격차는 2021년 초 거의 0에 가까웠지만, 2022년 4분기에는 평균 8.5%포인트까지 확대됐다.
2022년 12월에는 에너지 가격이 하위 20% 가구의 전체 인플레이션을 약 12%포인트 끌어올렸다. 상위 20% 가구에 대한 기여도는 3.9%포인트에 그쳤다. 식품 가격의 기여도 역시 하위 가구에서는 4.1%포인트였지만 상위 가구에서는 1.8%포인트였다.
같은 시장에서 같은 가격표를 보더라도 생활비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같지 않았던 것이다. 연구진의 벡터자기회귀(VAR) 분석에서는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1% 상승할 때 저지출 가구와 고지출 가구 사이의 물가격차가 약 0.2%포인트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상의 역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중앙은행은 일반적으로 금리를 올려 수요를 낮추고 물가 상승을 억제한다. 금리 인상은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국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의 상승세를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Corsello와 Riggi는 에너지 가격 충격에 대응한 강력한 금리 인상이 가구 간 인플레이션 격차를 오히려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는 금리 인상이 모든 가격에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비스와 비에너지 공산품처럼 국내 수요에 민감한 근원물가는 금리 인상의 영향을 비교적 크게 받는다. 반면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수입 에너지 가격은 국제시장과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국내 금리를 올린다고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
고소득 가구는 금리 인상으로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는 서비스와 근원물가 품목에 더 많은 돈을 쓴다. 따라서 긴축 통화정책의 물가 억제 효과를 상대적으로 크게 누릴 수 있다. 반대로 저소득 가구는 금리로 통제하기 어려운 에너지와 식품에 더 많은 돈을 사용하기 때문에 혜택이 제한적이다.
이는 금리 인상이 저소득층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면 전체 물가가 더 크게 상승해 저소득 가구도 더 큰 피해를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통화정책으로 얻게 되는 물가 안정의 혜택이 고소득층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저소득 가구의 어려움은 높은 체감 물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저축이나 금융자산이 부족하고 신용시장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가격이 갑자기 오르더라도 저축을 사용하거나 대출을 받아 소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연구에서 설정한 저소득 가구는 매달 들어오는 소득 대부분을 바로 소비하는 ‘핸드투마우스(hand-to-mouth)’ 가구로 표현된다. 이러한 가구는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오르면 선택 가능한 대응 방법이 거의 없다. 다른 지출을 줄이거나 필수재 소비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반면 고소득 가구는 저축과 자산을 활용해 일시적인 가격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가격의 문제인 동시에 가구가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금융 능력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중앙은행의 목적은 전체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지만, 금리라는 수단만으로 특정 계층의 생활비 부담까지 해결하기는 어렵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국내의 과도한 소비보다 해외 에너지 가격 상승에서 시작됐다면 금리 인상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연구진은 이러한 상황에서 통화정책과 선별적인 재정정책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을 통해 전반적인 인플레이션 확산을 막는 동안, 정부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취약계층을 직접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전기·가스 요금 지원, 에너지 바우처, 저소득 가구 대상 현금 이전과 같은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모든 가구에 동일한 보조금을 지급하기보다 에너지 지출 비중이 높고 가격 충격을 스스로 흡수하기 어려운 계층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에너지 세금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정책은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려는 장기적인 환경정책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가격 자체를 광범위하게 낮추기보다는 피해가 큰 가구의 소득을 직접 보전하는 정책을 신중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평균 물가 뒤에 가려진 불평등
공식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경제 전체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그러나 하나의 평균 수치만으로는 가구들이 실제로 겪는 생활비 충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연구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오히려 지출 수준이 높은 가구가 경험하는 물가 흐름과 더 비슷하게 움직였다.
결국 “현재 인플레이션은 몇 퍼센트인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품목의 가격이 올랐는지, 어느 계층이 그 품목에 더 많은 돈을 쓰는지, 그리고 가격 충격을 견딜 저축과 자산을 가지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모두에게 고통을 주지만 그 고통의 크기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평균 물가를 낮추는 통화정책과 취약계층의 구매력을 보호하는 재정정책이 함께 작동할 때, 물가 안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도하지 않은 불평등도 줄일 수 있다.
Citation
Corsello, F., & Riggi, M. (2023). Inflation is not equal for all: The heterogeneous effects of energy shocks. Temi di Discussione (Working Papers), No. 1429, Bank of Italy. https://doi.org/10.32057/0.TD.2023.1429